금융감독원이 실질적인 상장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채 '꼼수'로 상장을 유지하고 있는 이른바 ‘좀비 기업’ 집중 단속에 나선다. 이들 기업이 불공정 거래 통로로 쓰여 투자자에게 피해를 입히고, 정상적인 기업에 갈 자금을 흡수해 국내 증시를 좀먹는다는 판단에서다.
금감원은 상장폐지를 당한 기업, 상장폐지 위기를 겪고 있는 기업, 상장폐지 위험을 피한 기업, 상장 진입 단계 기업 등을 전방위로 들여다볼 계획이다. 자본시장 조사 1~3국, 공시심사실, 회계감리 1~2국을 모두 동원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관리종목이나 투자주의환기종목 등 특정 분류 내 기업만을 보려는 것이 아니다”라며 “아예 관리종목에 들어간 적이 없는 기업 중에도 사실상 좀비 기업이 있을 수 있어 자금 조달·사용, 공시, 회계처리 등 각 단계를 따질 것”이라고 말했다.
3개분기 동안 부진했던 매출이 연말께 급증해 연간 매출 기준 관리종목 지정을 피하는 등 상장 요건을 간신히 맞추고 있는 기업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일 수 있다는 얘기다. 금감원은 아직 조사 기업 수 등 조사 규모는 확정하지 않았다.
한 무자본 인수합병(M&A) 세력은 인수대상 기업인 A사가 자기자본의 50% 이상 세전 손실을 내 상폐 위험에 처하자 연말에 대규모 유상증자를 벌여 A사가 상장폐지 요건 적용을 모면하도록 했다. 이 세력 일당은 이후 A사의 주가가 상승하자 증자대금을 횡령한 뒤 페이퍼컴퍼니 명의로 보유 중이던 주식 등을 고가에 매도하는 식으로 부당이득을 편취했다.
B사는 자산을 과대계상하는 식으로 상장폐지 요건을 비껴났다. 분식재무제표를 활용해 수년간 1000억원대 자금을 조달한 뒤 기존 차입금을 갚기도 했다. 이 기업의 최대주주는 B사가 상폐 위기를 피한 뒤 보유 주식을 매도하는 식으로 부당이득을 냈다.
상장 진입과 관련된 불공정거래도 단속한다. 신규상장을 위해 분식회계, 이면계약 등으로 덩치를 부풀린 경우를 잡아낸다는 취지다. 금감원은 “상장 당시 추정한 매출액 등 실적 전망치가 실제 수치와 크게 차이나는 경우 전망치 산정의 적정성 등에 대해 면밀히 분석할 것”이라고 했다.
금감원은 카카오모빌리티가 기업공개(IPO)를 염두에 두고 고의적으로 매출액을 부풀려 회계 처리를 했다고 보고 제재 절차를 밟고 있다. 실적 전망치와 실제 실적간 괴리가 커 ‘뻥튀기 상장’ 논란이 일고 있는 파두에 대해서도 들여다보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상장폐지된 기업 중 9개사가 거래정지 전 2년간 유상증자,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을 통해 증시에서 조달한 금액은 총 3237억원에 달한다. 이중 유상증자 규모는 1170억원, CB·BW 규모는 2067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달 “오랜 기간 별다른 성장을 못하거나, 재무지표가 나쁘거나 인수합병(M&A)의 수단이 되는 기업들을 계속 시장에 그냥 두는 게 맞는지 의문”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금감원은 이번 조치가 금융위원회 등이 추진하고 있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과는 별개 사안이라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밸류업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한 조사는 아니다”라며 “국내 증시의 건전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좀비기업의 숨겨진 부실과 불법행위를 명백히 밝히고, 해당 기업을 적시에 퇴출되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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